경남연구원,거제 가배량진성의 역사적 위상 재조명 –조선시대 남해안 수군 방어체계의 변천을 보여주는 핵심 군사유적 -본영 성곽에서 가배량진까지...남해안 방어거점470년 역사 재조명 경남연구원(원장 오동호)은 최근‘경상우수영의 뿌리,남해안 방어의 핵심기지 가배량진성의 역사적 위상 복원’을 주제로 정책브리프를 발간했다. 이번 연구는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조사 성과를 종합해,현재 경상남도 기념물인 거제 가배량진성이 조선 후기 가배량진의 성곽에만 한정되지 않고,조선 전기 경상우도 수군을 총괄하던 경상우수영 본영 성곽에서 출발한 유적임을 재조명했다.

현재 가배량진성은 임진왜란 이후 이곳으로 옮겨온 가배량진의 성곽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조선 전기이 지역은 오아포(吾兒浦)라 불렸으며,세종대에 경상우수영이 설치된 뒤 성종19년(1488)경상우수영성이 축조됐다.이곳은 경상우도 수군의 병선과 군사를 지휘·관리하던 핵심 본영이었다. 오아포는 남해 내해와 외해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충지이자,풍랑을 피해 병선을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는 천혜의 항구였다.당시 오아포의 경상우도 수군은 병선28척과 군사2,601명을 거느린 대규모 진영으로,조선 전기 남해안 수군 방어를 지휘하는 중심지였다.

성곽의 규모와 구조도 본영 성곽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가배량진성은 둘레 약1,574m의 대규모 성곽으로, 7기의 치성과4개소의 성문,외곽 해자를 갖추고 있다.최근 발굴조사에서는 치성 위에 설치된 망루의 기저부도 확인됐다.성벽·해자·치성·망루를 갖춘 복합적인 방어시설은 이곳이 단순한 지방 수군진이 아니라 경상우도 수군을 총괄하던 지휘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현재 경상우수영은 통영을 중심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그 역사적 원류는 조선 전기 오아포에 설치된 경상우수영에서 찾을 수 있다.임진왜란 이후인 선조26년(1593)통제영이 고성현 두룡포에 설치되고,선조37년(1604)경상우수영도 두룡포로 이전하면서 오아포의 본영 기능은 사라졌다.

이후 고성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기존 경상우수영성은 가배량진성으로 전환됐고,조선 말기까지 남해안 방어의 거점으로 활용됐다. 이에 따라 가배량진성은 조선 전기 경상우수영 본영과 조선 후기 가배량진의 흔적이 한 성곽에 함께 남아 있는 유적이다.조선시대 남해안 수군 방어체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군사유적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이재명 조사연구위원은“가배량진성은 조선 전기 경상우도 수군의 최고 지휘부가 있던 성곽에서 출발한 유적”이라며“약470년에 걸쳐 남해안 수군 방어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한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향후 보존·관리와 활용 과정에서 경상우수영 본영 성곽이라는 역사적 성격을 적극 반영하고,경상남도 기념물인 가배량진성의 국가사적 승격 가능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정책브리프는 경남연구원 홈페이지(www.gni.re.kr)연구 카테고리‘브리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